
“책이 확산되면서, 좀스럽게 구는 스승들과 논쟁을 벌이는 대신 스스로 배울 수 있게 된 것이다.”
- “다른 의견”, “이언 레슬리”
고대 그리스에서 지식은 종이가 아니라 목소리에 실려 다녔습니다. 아고라 광장이 곧 학교였고, 배움이 이루어지는 방식은 논쟁이었습니다. 다만 당시의 논쟁을 찬찬히 살펴보면, 진리를 향한 순수한 탐구라기보다 자기 지성을 뽐내는 무대에 가까웠던 듯합니다. 광장에서 말로 상대를 꺾는다는 것은 곧 자기 명성을 올리는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왜 ‘오래’ 살아남았을까
그런 세계에서 남의 의견에 평생 질문을 던지는 일을 업으로 삼은 인물이 있었습니다. 바로 소크라테스입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을 연구하는 시카고대학의 아그네스 칼라드 교수는 그의 죽음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바라봅니다.
“결국 아테네시는 소크라테스에게 사형 선고를 내렸다. 칼라드는 이 결과가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소크라테스가 그렇게 오래 살아남은 것이 놀랍다고 했다.”
- “다른 의견”, “이언 레슬리”
사형당한 것이 이상한 게 아니라, 그 나이까지 무사했던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는 이야기입니다.
타인의 신념을 사람들 앞에서 허무는 일을 직업처럼 해온 사람이 일흔까지 살았다는 사실은, 뒤집어 보면 그가 상대의 마음을 읽는 데 그만큼 탁월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소크라테스는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와중에도 상대가 느낄 불안을 어루만지고 감정이 상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신경을 썼고, 아마 그 정성이 그의 수명을 늘려주었을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그 정도의 공을 들이지 않고서는 남의 생각에 토를 다는 일 자체가 목숨값을 치러야 할 만큼 위태로운 시대였다는 뜻이 됩니다.
우리 뇌는 의견에 대한 공격을 몸에 대한 공격처럼 받아들입니다
의견이 부딪히는 일이 어째서 그토록 위험했을까요?
흔히들 ‘나’와 ‘내 생각’은 별개이니 분리해서 받아들이라고 조언합니다. 좋은 말이지만, 우리 뇌는 그 조언을 따라주지 않습니다.
2016년 신경과학자 조나스 캐플런 연구팀이 내놓은 연구 결과가 이를 보여줍니다. 깊이 뿌리내린 신념이 공격받는 순간, 뇌에서는 몸에 가해지는 위협을 감지할 때 켜지는 영역이 같이 켜집니다. 즉 뇌의 입장에서 내 의견을 향한 반론은, 내 몸을 향한 위해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사건으로 처리되는 셈입니다.
참고: 의견 대립은 바람직한가?
인쇄술이 바꾼 것
수천 년을 이어온 이 문제에 균열을 낸 것이 인쇄술입니다.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 인쇄술을 완성한 시점은 1440년대입니다. 이 기술은 놀라운 속도로 유럽 곳곳에 자리 잡았고, 1500년경에는 이미 수백만 부에 달하는 책이 사람들 손에 들려 있었습니다.
책이 귀하지 않게 되자 배우는 방법부터 달라졌습니다. 스승 밑에서 도제로 배움을 이어받는 대신, 혼자서도 공부할 길이 열린 것입니다.
책은 사람과 의견을 분리해 주었습니다
저는 책이 가진 결정적인 힘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책은 인류가 최초로 갖게 된, ‘사람’과 ‘의견’을 떼어놓는 기술이었습니다.
책 속 주장에 아무리 반발해도 저자가 눈앞에 서 있지 않습니다. 읽다가 내가 틀렸음을 깨닫더라도 그 장면을 목격한 사람이 없으니 체면이 깎일 일도 없습니다. 뇌가 경계해야 할 위협의 대상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책 앞에서만큼은 무장을 해제할 수 있습니다. 밑줄을 긋고, 잠시 덮어두었다가, 며칠을 두고 곱씹고, 다시 펼쳐 생각을 바꿉니다. 얼굴을 맞댄 논쟁이었다면 자존심이 상해 끝까지 버텼을 것도, 책 앞에서는 소리 없이 받아들이게 됩니다.
인류의 지식이 폭발적으로 불어난 시기는 인쇄술 이후입니다. 저는 그 원인이 단순히 정보량이 늘어난 데에만 있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위협받지 않으면서 틀려볼 수 있는 공간, 감정의 방어막을 세우지 않고도 다른 생각과 마주할 수 있는 공간이 처음으로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독서란, 인류가 발명한 가장 안전한 형태의 논쟁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