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최근 한 친구에게 코덱스로 사이트를 세팅해 주고 거기서 작업할 수 있게 도와준 적이 있었습니다.
☐ 제가 해 준 일은 사이트가 돌아갈 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었습니다.
- 도메인을 연결하고, 호스팅에 올리고, HTTPS까지 맞춰서 파일만 고치면 바로 사이트에 반영되는 상태로 만들어 준 거죠.
- 집으로 치면 터를 닦고 전기와 수도를 끌어다 놓은 정도입니다.
☐ 그 상태에서 친구는 GPT에게 이것저것 명령을 내리면서 javascript와 PHP 기반으로 필요한 것을 잘 만들더군요.
- 코드를 못 읽는 사람이었는데도 그랬습니다.
☐ 그걸 보면서 제가 먼저 만들어 준 그 자리가 어떤 의미였는지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어려운 부분이 코드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 갔습니다
☐ 예전에는 비개발자가 사이트를 만들지 못하는 이유가 분명했습니다.
- 코드를 짤 줄 몰랐기 때문입니다.
☐ 지금은 코드를 AI가 대신 써 줍니다.
- 친구가 그걸 보여줬죠.
- 그런데 그렇다고 비개발자가 혼자 사이트를 시작할 수 있게 된 건 아닌 것 같습니다.
- 어려운 부분이 사라진 게 아니라 다른 곳으로 옮겨 갔기 때문입니다.
☐ 비개발자는 사이트가 어떻게 구성되는지, 도메인이 무엇인지, 호스팅이 무엇인지 그 개념 자체를 모릅니다.
- 막히는 곳은 코드가 아니라 바로 그 부분입니다.
- 그리고 그 부분은 AI가 대신 해 주기 어려운 영역이기도 합니다.
- 도메인을 사려면 결제를 해야 하고, 호스팅에 가입해야 하고, 둘을 서로 연결해야 합니다.
- 모두 채팅창 바깥에서 본인 손으로 해야 하는 일들입니다.
모르는 것은 물어볼 수 없습니다
☐ 물론 AI는 물어보면 대답해 줍니다.
- 도메인이 뭔지 모르면 도메인이 뭐냐고 물으면 됩니다.
- 꽤 친절하게 설명해 줍니다.
☐ 문제는 그 전 단계입니다.
- 도메인은 기간 이용권처럼 산다는 것, 요즘 사이트를 만들 때 HTTPS 인증은 필수로 받아야 한다는 것.
- 이런 것들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면 질문을 할 수가 없습니다.
- 모르는 줄도 모르는 상태에서는 질문이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 낯선 도시에서 길을 묻는 것과 비슷합니다.
- 목적지 이름을 알면 누구에게든 길을 물어서 찾아갈 수 있습니다.
- 하지만 목적지 이름을 모르면, 아무리 친절한 사람이 옆에 있어도 무엇을 물어야 할지 모릅니다.
대답을 받아도 이해할 바탕이 없습니다
☐ 그럼 처음부터 크게 물어보면 어떨까요?
- AI에게 “사이트를 어떻게 만들면 되니?”라고 물으면 대답은 돌아옵니다.
☐ 하지만 그 대답에는 보통 여러 갈래가 섞여 있습니다.
- 홈페이지 빌더를 쓰는 방법, 워드프레스를 설치하는 방법, 호스팅을 받아서 직접 코드를 올리는 방법.
- 그 안에 도메인, 호스팅, DNS, SSL 같은 단어가 한꺼번에 나옵니다.
- 개념이 없는 상태에서는 이 중 무엇이 내 상황에 맞는지 고르기 어렵고, 어떤 단어부터 이해해야 하는지도 정하기 어렵습니다.
☐ 대답이 틀린 게 아닙니다.
- 대답에 나오는 단어들을 이해할 바탕이 없는 겁니다.
- 도메인이 뭔지 모르는 사람에게 ‘DNS를 설정하세요’라는 문장은 한국어로 쓰여 있어도 외국어처럼 읽힙니다.
- 무엇을 하라는 건지 알 수 없으니, 다음에 무엇을 물어야 할지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 AI를 잘 쓰는 능력은 결국 질문하는 능력이라고들 합니다.
- 그런데 질문은 아는 것에서 나옵니다.
- 아는 것이 거의 없는 분야에서는 질문 자체가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필요한 건 깊은 지식이 아니라 지도 정도입니다
☐ 그렇다고 AI를 활용하려면 그 분야를 제대로 공부해야 하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닌 것 같습니다.
- 친구는 코드를 몰라도 결과물을 만들었으니까요.
☐ 필요한 건 그 분야에 대략 어떤 덩어리들이 있는지 아는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 사이트를 만들려면 주소가 있어야 하고(도메인), 파일을 올려 둘 곳이 있어야 하고(호스팅), 보안 인증이 필요하다(HTTPS)는 것.
- 세부 내용은 몰라도 그런 칸들이 있다는 것만 알면, 각 칸을 채우는 일은 AI에게 물어가며 할 수 있습니다.
☐ 지도가 있으면 질문이 생기고, 질문이 생기면 AI가 대답으로 채워 줍니다.
- 지도가 없으면 대답을 받아도 그게 전체 중 어디에 해당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지도는 빌릴 수도 있습니다
☐ 돌이켜 보면 제가 친구에게 해 준 일은 제 지도를 빌려 준 것이었습니다.
- 어떤 칸들이 필요한지 아는 사람이 그 칸을 먼저 채워둔 거죠.
- 친구는 그 위에서 바로 질문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 지도 없이도 며칠을 고생하면 시작은 할 수 있을 겁니다.
- 다만 그 며칠의 대부분은 만드는 데가 아니라 무엇을 물어야 할지 찾는 데 쓰일 것 같습니다.
☐ AI에게 처음부터 “이 일을 하려면 어떤 것들을 알아야 하니?”라고 묻는 것도 방법일 수 있겠습니다.
- 답을 구하기 전에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부터 묻는 것이죠.
- 다만 이 경우에도 돌아온 목록 중에서 무엇이 먼저인지 가려내려면 어느 정도의 감은 필요한 것 같습니다.
☐ 그래서 비개발자가 AI로도 사이트를 시작하기 어려운 이유는 코드 때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무엇을 물어야 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 직접 그 분야의 지도를 갖추거나 지도를 가진 사람의 도움을 빌리는 것.
- AI를 쓸 때도 그 출발점은 여전히 필요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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