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리는 언제 진로를 선택했을까요?
- 돌이켜보면 이상한 일입니다.
- 우리는 고등학교까지 열심히 공부합니다.
- 무엇을 위해 공부하는지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일단 성적을 올리는 데 집중합니다.
- 그리고 원서를 쓸 때가 되면,
- 그동안 쌓은 점수에 맞춰 ‘흥미가 있을 것 같은’ 전공을 선택합니다.
- 운이 좋으면 해볼 만한 전공을 만나고
- 운이 나쁘면 재수나 전과, 혹은 반수라는 재도전을 하게 됩니다.
☐ 뭔가 맞지 않습니다.
- 고등학생은 자신을 탐색하기에는 공부하느라 너무 바쁩니다.
- 대학생이 되면 이미 전공을 선택해버린 뒤입니다.
- 취업을 하면 첫 직장의 산업과 직무가 이후 경력의 방향을 상당 부분 좌우합니다.
- 사회 전체로 보면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자리를 채우며 굴러가지만
-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인생의 방향이 지나치게 운에 좌우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선택이 아니라 추첨에 가깝습니다
☐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기 이해, 그러니까 자신의 강점과 흥미와 가치관을 아는 일은
- 책상 앞에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만 형성됩니다.
- 그런데 우리 시스템은 경험이 가장 부족한 시기의 사람에게
- 가장 무거운 선택을 요구합니다.
- 경험 없이 내린 선택이 인생을 좌우한다면, 그것은 선택이라기보다 추첨에 가깝습니다.
☐ 실제 통계도 이 시스템의 균열을 보여줍니다.
- 미국 연방 준비은행의 조사에 따르면
- 대졸자의 70% 이상이 자신의 전공과 직접 관련 없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 ‘전공이 곧 평생의 진로’라는 전제는 통계적으로 이미 무너져 있는 셈입니다.
☐ 대학들이 무전공 입학을 확대하고
- 전공 선언을 늦추는 학부제를 도입하는 것도 이 문제의식에서 나온 제도적 보완입니다.
Q. 무전공 제도는 괜찮은가?
☐ 2024년 기준 자율전공 선발 비율이 6.6%
- 2025년 기준 28.6%
- 점차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 그런데 잘 운영되고 있는가 하면 회의적입니다.
1) 탐색이 아니라 또 다른 경쟁이 됐습니다.
- 전공 진입을 학점으로 자르는 학교에서는 인기학과를 목표로 하면
- 공부 압박이 오히려 남들보다 심해집니다.
- 1학년이 ‘나를 탐색하는 시간’이 아니라
- ‘원하는 전공에 들어가기 위한 내신 경쟁 시즌2’가 되는 것이지요.
- 고등학교 문제가 대학 1학년으로 그대로 이월된 구조입니다.
2) 쏠림이 극심합니다
- 경희대 국제캠퍼스 자유전공학부는 198명 중 52.5%가 반도체 호황 때문에 전자정보공학부를 택했습니다.
- 1년의 탐색 시간을 줘도 학생들은 ‘자기 적성’이 아니라
- 그 시점의 취업 시장 신호를 따라 선택합니다.
- 이건 제도가 전제하는 ‘탐색하면 자기에게 맞는 걸 찾는다’는 가정 자체가 흔들린다는 뜻입니다.
3) 이탈률이 높습니다.
- 무전공 입학생의 중도탈락 비율이 평균보다 2-5배 높게 나타나고 있고
- 소속감 없이 붕 뜬 상태에서 반수나 편입의 정거장으로 쓰이는 경우도 많습니다.
- 실제로 2010년대 중반 이후 이런 문제들로 자율전공학과를 폐지하는 대학이 많아졌다가
- 2024년 교육부가 무전공 확대를 장려하면서 다시 신설하는 추세가 되었습니다.
- 한 번 실패했던 제도가 정책 드라이브로 부활한 셈이라
- 근본 문제가 해결됐는지는 의문이 남습니다.
운을 없앨 수는 없지만, 잡을 확률을 키울 수 있습니다
☐ 스탠퍼드 대학의 심리학자 존 크럼볼츠는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은 사람들의 경로를 추적했습니다.
- 그들 대부분은 치밀한 계획으로 그 자리에 도달한 것이 아니고
- 우연한 만남, 우연한 기회, 우연한 사건이 경력의 결정적 전환점이 된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 크럼볼츠는 이것을 ‘계획된 우연’이라고 불렀습니다.
- 모순처럼 들리는 이 말의 핵심은
- 운을 없앨 수는 없다. 하지만 운이 찾아올 확률과, 찾아온 운을 잡을 능력은 키울 수 있다.
- 우연을 기회로 바꾸는 태도로 호기심, 유연성, 낙관성, 그리고 위험을 감수하는 자세를 꼽았습니다.
☐ 이 관점은 진로 문제를 다르게 보게 만듭니다.
- ‘운에 좌우된다’는 사실 자체는 바꿀 수 없습니다.
- 그러나 같은 운 앞에서도 사람마다 결과가 달라지는 이유는
- 우연이 찾아왔을 때 그것을 알아보고 붙잡을 준비가 되어 있느냐의 차이입니다.
첫 선택의 무게를 줄이는 것
☐ 열여덞 살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하는 시스템은
- 분명 개인에게 불리하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 그 문제의식은 타장합니다.
- 그러나 해법은 ‘더 신중한 첫 선택’은 아닙니다.
- 아무리 신중해도 경험 없는 선택의 한계는 극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 첫 선택의 무게를 줄이는 게 한 가지 방법입니다.
- 진로를 한 번의 결정이 아니라 반복되는 실험으로 재정의하고
- 낮은 비용으로 시도해볼 수 있는 구조를 스스로 만들기.
- 우연이 찾아올 접점을 늘리고
- 찾아온 우연을 붙잡을 태도를 기르는 것.
- 그것이 운의 지배력을 줄이는, 개인이 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언급한 사람
☐ 존 크럼볼츠
- 진로상담 분야의 최고 권위자로 2004년 미국상담협회로부터 ‘상담계의 살아 있는 전설(Living Legend in Counseling Award)’에 선정되었다.
- 저서 “빠르게 실패하기”, “굿럭”, “천 개의 성공을 만든 작은 행동의 힘”
Comments
댓글
댓글을 불러오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