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마음생활

운으로 풀리는 이야기는 왜 재미가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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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를 보다가 갑자기 흥이 식는 순간이 있습니다.

  • 주인공이 빚더미에 앉아 있고 사채업자에게 쫓기고 있었는데, 어느 날 잊고 있던 먼 친척이 나타나 유산을 안겨 줍니다.
  • 문제는 해결됐고 주인공은 웃습니다.
  • 그런데 저는 웃지 못하고 리모컨으로 TV를 끕니다.

☐ 이상한 일입니다.

  • 주인공이 잘 되는데 왜 기분이 나빠질까요?
  • 심지어 현실에서는 그런 행운이 저에게도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말이죠.

2300년 전에도 똑같이 짜증을 낸 사람이 있었습니다

☐ 고대 그리스 연극에는 기중기 비슷한 장치가 있었습니다.

  • 배우를 매달아 공중에서 내려보내는 기계였고, 주로 신 역할을 맡은 배우가 여기에 탔습니다.
  • 이야기가 도저히 수습이 안 될 때, 신이 하늘에서 내려와 모든 걸 정리하고 퇴장합니다.
  • 여기서 나온 말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 ‘기계 장치로 내려온 신’입니다.

☐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이 수법을 대놓고 비판했습니다.

  • 사건의 해결은 반드시 플롯 자체에서 나와야 하고, 기계 장치에서 나와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 그가 남긴 문장 중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개연성 있는 불가능이 개연성 없는 가능보다 낫다.”

☐ 용이 나오는 이야기는 괜찮습니다.

  • 용이 있다는 전제만 받아들이면 그 다음은 앞뒤가 맞으니까요.
  • 반면 현실적인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이 우연히 로또에 당첨되는 건,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인데도 견디기 어렵습니다.
  • 관객이 원하는 건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가’가 아니라 ‘말이 되는가’였던 겁니다.

‘그리고 나서’와 ‘그러므로’의 차이

☐ 사우스파크를 만든 트레이 파커와 맷 스톤이 이야기 구성에 대해 말한 규칙이 하나 있습니다.

  • 각본을 써놓고 장면과 장면 사이를 읽어 봤을 때 연결어가 “그리고 나서(and then)”라면 그 각본은 망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 좋은 이야기는 장면 사이가 “그러므로(therefore)” 또는 “그러나(but)”로 이어집니다.

☐ 이 차이가 생각보다 큽니다.

  • ‘그리고 나서’는 사건을 나열할 뿐이지만
  • ‘그러므로’와 ‘그러나’는 앞뒤 사건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즉 인과관계를 만듭니다.

☐ ‘그리고 나서’로 연결된 이야기는 재미가 없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야기가 아니게 된 것에 가깝습니다.

재미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 이야기를 볼 때 우리가 하는 일은 사실 예측입니다.

  • 다음 장면에 무엇이 올지 계속 추측합니다.
  • 저 인물이 왜 저 말을 했는지, 아까 그 물건은 나중에 쓰이지 않을지.

☐ 맞으면 맞아서 즐겁고, 틀리면 틀려서 즐겁습니다.

  • 재미는 이 예측 게임 자체에서 나옵니다.

☐ 그런데 재미가 사라지는 경우는 두 가지입니다.

  • 하나는 전부 맞아버리는 경우입니다. 10분 만에 결말이 보이는 이야기죠.

☐ 다른 하나는 예측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경우입니다.

  • 운으로 이야기가 풀려버리면 뻔해서 재미없는 게 아니라, 내다볼 것이 없어서 재미없는 겁니다.

우리 뇌는 인과관계를 찾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 1944년 심리학자 프리츠 하이더와 마리안네 지멜이 짧은 애니메이션 하나를 만들었습니다.

  • 화면에서 움직이는 것이라고는 큰 삼각형, 작은 삼각형, 원 - 3개의 도형뿐이었습니다.
  • 실험 참가자들에게 본 것을 설명해 보라고 했더니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야기를 만들어 냈습니다.
  • 큰 삼각형이 작은 삼각형을 괴롭히고 있었다.
  • 원이 도망치려 한다.
  • 둘이 힘을 합쳐 맞선다.

☐ 화면에 있던 건 좌표를 따라 움직이는 도형뿐이었습니다.

  • 의도도 감정도 인과도 없었습니다.
  • 그걸 전부 관객의 머릿속에서 만들어 낸 겁니다.
  • 우리는 이야기를 즐기는 존재라기보다 이야기를 만들지 않고는 세상을 볼 수 없는 존재에 가깝습니다.
  • 도형 3개에도 서사를 붙이는 뇌에게, 아무 이유 없이 문제가 해결되는 장면은 처리할 방법이 없는 입력값입니다.

☐ 안톤 체호프가 남긴 유명한 조언도 결국 같은 이야기입니다.

  • 1막에서 벽에 총이 걸려 있었다면 그 총은 반드시 발사되어야 하고, 발사되지 않을 거라면 애초에 걸어 두지 말라는 것이죠.
  • 관객은 화면에 놓인 모든 것에서 이유를 찾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 우리는 이야기 속의 운은 못 견디면서, 현실의 운은 아주 잘 견딥니다.

  • 아니, 아예 보지 못합니다.

☐ 나심 탈레브는 이것을 내러티브 오류라고 불렀습니다.

  • 실제로는 무작위에 가까운 결과에 우리가 사후적으로 그럴듯한 인과를 붙여 이야기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 성공한 창업자의 인터뷰를 읽어 보면 모든 결정이 ‘그러므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 이런 판단을 했기 때문에, 그래서 이런 결과가 나왔다는 식이죠.
  • 하지만 같은 판단을 하고 사라진 회사들은 인터뷰를 하지 않습니다.
  • 우리는 살아남은 쪽의 각본만 읽고 있습니다.

☐ 저도 잘 풀린 일에 대해서는 제 판단이 좋았다고 설명하고, 안 풀린 일에 대해서는 시장 탓을 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 지금 생각해보면 각본 작업에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 운으로 풀리는 이야기가 재미없는 이유는 운이 예측할 거리를 없애 버리기 때문입니다.
  • 재미는 앞을 내다보는 데서 나오는데, 무엇이든 굴러 들어올 수 있는 세계에서는 내다볼 것이 없습니다.
  • 그때 남는 건 화면을 눈으로 따라가는 일뿐이고, 그건 이야기를 보는 게 아니라 사건을 구경하는 일에 가깝습니다.

☐ 그러고 보면 좋은 이야기에도 운은 늘 들어 있습니다.

  • 어디에 놓이느냐가 다를 뿐입니다.
  • 운이 앞쪽에 오면 그건 설정이 됩니다.
  • 가난한 집에 태어났고, 하필 그날 그 사람을 만났고, 회사가 하필 그때 망했습니다.

☐ 관객은 이런 우연을 아무 저항 없이 받아들입니다.

  • 오히려 여기서부터 예측할 거리가 생기니까요.
  • 그런데 똑같은 크기의 우연인데 마지막에 오면 반칙이 됩니다.
  • 운은 출발점일 때는 이야기를 시작시키고 결승선일 때는 이야기를 지웁니다.

☐ 저는 이게 인생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 시작이 운이었다는 걸 인정하는 건 손해 볼 일이 아닙니다.
  • 어느 집에서 태어났는지는 제가 결정한 일이 아니니까요.
  • 그건 설정이지 결론이 아닙니다.
  • 인정하고 나면 오히려 그 다음 칸이 비어 보입니다.
  • 남이 써 놓은 앞부분을 읽는 대신 뒷부분에 무엇을 쓸지 생각하게 됩니다.

☐ 정작 곤란한 건 결말 쪽에서 운을 기다리는 태도인 것 같습니다.

  • 지금은 잘 안 되지만 언젠가 뭔가 터질 거라는 마음이요.
  • 그 상태로 꽤 오래 있어봤지만 기다리는 동안에는 아무것도 쌓이지 않았습니다.
  • 그때 저는 제 이야기의 주인공이라기보다 관객에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SPELL QUEST · 문장 수선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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