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소크라테스는 기원전 470년경에 태어나 399년에 죽었습니다.
- 일흔 무렵이었습니다.
- 지금 기준으로도 적지 않은 나이인데, 영유아 사망이 흔하고 전쟁이 일상이던 고대 아테네에서 일흔까지 살았다는 건 상당히 오래 버틴 축에 듭니다.
- 게다가 그는 젊은 시절 세 차례나 중장보병으로 전쟁터에 나갔던 사람입니다.
☐ 그런데 그가 평생 한 일을 생각해 보면 이건 좀 이상합니다.
- 광장에 나가 사람들을 붙잡고 당신이 안다고 믿는 것이 정말 앎인지 계속 캐물었습니다.
- 상대는 대개 그 도시에서 지혜롭다고 인정받던 사람들이었습니다.
- 그리고 대화가 끝날 때쯤이면 그 사람은 자기가 사실 잘 모르고 있었다는 걸 구경꾼들 앞에서 인정하게 됩니다.
☐ 이런 일을 매일 하는 사람이었는데 지속적으로 목숨을 위협받지 않았을까요?
- 그런데 어떻게 일흔까지 살아남았을까요?
- 여기서 사람들이 자주 주목하는 게 그의 말하는 방식입니다.
- 소크라테스는 ‘그건 틀렸습니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 대신 이렇게 말했습니다.
- ‘나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러니 당신이 좀 가르쳐 주십시오.’
- 같은 반박이라도 형식이 다릅니다.
- 앞에 문장에서는 제가 심판이 되고 뒤의 문장에서는 상대가 선생이 됩니다.
- 내용은 결국 ‘당신 말에 구멍이 있는 것 같다’로 같은데 상대가 자기 말을 스스로 들여다볼 여유가 생깁니다.
그런데 그는 결국 독배를 마시지 않았나요
☐ 물론 소크라테스는 마지막에 사형을 당했습니다.
- 그러니 그 화법이 별 소용 없었던 것 아니냐고 물으실 수 있습니다.
- 그런데 그를 법정에 세운 건 대화가 아니라 정치였습니다.
- 재판이 열린 기원전 399년은 아테네가 전쟁에서 지고 독재정권을 겪은 직후였고, 그 정권의 핵심에 있던 인물들이 하필 그의 곁을 드나들던 젊은이들이었습니다.
- 죄목은 불경죄와 청년 타락이었지만, 실제로 그를 벼랑으로 민 건 그 시절의 공기였습니다.
☐ 여기서 저는 소크라테스가 매우 오래 잘 살아남았다고 생각합니다.
- 남의 무지를 드러내는 일을 평생하고도 일흔까지 살았다면 그 화법이 그를 그만큼 오래 지켜준 겁니다.
- 같은 일을 ‘그건 틀렸습니다’로 했다면 훨씬 일찍 끝났을 겁니다.
- 그러니까 예쁘게 말하자는 건 할 말을 줄이자는 뜻이 아닙니다.
☐ 지적도 예쁘게 하자는 겁니다.
- 지적을 하지 말자는 게 아니라 그 지적이 상대에게 도착하게 만들자는 것입니다.
- 상대가 방어 태세를 세우고 나면 그 뒤에 오는 말은 아무리 옳아도 들리지 않습니다.
- 같은 내용이라도 어떻게 꺼내느냐에 따라 조언이 되기도 하고 공격이 되기도 합니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 어려운 부탁도 어떻게 꺼내느냐에 따라 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하고 같은 지적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 고마운 조언이 되기도 하고 평생 서먹해지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 문제는 이겁니다.
- 우리는 그 말 한마디를 어떻게 만드는지 배운 적이 없습니다.
- 학교에서 배운 건 정답을 찾고 그것을 논리적으로 주장하는 방법이었습니다.
-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다른 의견을 말하는 방법은 교과 과정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 그래서 대부분은 어른이 되고 나서 부딪혀 가며 몸으로 익힙니다.
- 잘 익히는 사람도 있고 끝내 못 익히는 사람도 있습니다.
- 감정이 나오는 대로 툭툭 뱉는 게 솔직한 것이라고 여기는 분들도 있습니다.
- 그런데 그건 솔직한 게 아니라 그냥 안 다듬은 것에 가깝습니다.
- 마음속 생각을 가공 없이 내보내는 건 기술이 아니라 기술의 부재니까요.
반대는 왜 공격처럼 느껴질까요
☐ 머리로는 다들 압니다.
- 의견에 대한 반대는 사람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는 점.
- 그런데 실제로 반대를 당해 보면 이상하게 얼굴이 화끈거리고 방어하고 싶어집니다.
☐ 이건 우리가 미숙해서가 아니라 사람이 원래 그렇게 생겼기 때문입니다.
- 우리는 자기 생각을 자기 자신의 일부라고 봅니다.
- 그래서 생각이 흔들리면 나라는 사람이 흔들리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 이 느낌이 드는 순간 대화는 사실상 끝납니다.
- 그때부터는 무엇이 맞는지가 아니라, 누가 지느냐의 문제가 되니까요.
☐ 그러니 반대 의견을 말할 때 신중해야 하는 이유는 상대가 유리 멘탈이어서가 아닙니다. 그냥 사람이 다 그렇게 반응하도록 되어 있어서 그 반응이 켜지지 않도록 미리 조심하는 겁니다. 이언 레슬리는 다른 의견에서 상대에게 퇴로를 열어 주는 일, 즉 체면을 지킬 여지를 남기는 일을 생산적인 대화의 조건으로 꼽습니다. 궁지에 몰린 사람은 옳은 말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제가 쓰는 몇 가지
☐ 상대에게 ‘이렇게 해’ 라고 하기보다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라고 하기
☐ ‘너는 틀렸어’라고 하기보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라고 하기
☐ 반대부터 하지 말고 상대방을 먼저 이해하는 단계부터 거친 다음에 신중하게 의견말하기
☐ “제가 잘못 이해했을 수도 있는데요”라는 말을 앞에 붙여서 대화를 부드럽게 하기
☐ 이걸 두고 가식이라고 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 저도 한때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 그런데 지금은 조금 다르게 봅니다.
- 상대가 방어 태세를 풀도록 말을 고르는 일은 내 의견을 굽히는 게 아니라 내 의견이 실제로 전달될 확률을 높이는 일입니다.
-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상대의 귀가 닫히면 소용이 없으니까요.
☐ 배운 적이 없다는 건 못 한다는 뜻이 아니라 지금부터 배우면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이 계속 실감나는 요즘입니다.
Comments
댓글
댓글을 불러오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