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977년 발사된 보이저 2호는 12년 뒤인 1989년 8월 25일, 해왕성 북극 상공을 지나갔습니다.
- 70억 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날아간 끝에, 예정된 통과 시각에서 딱 1초 어긋난 채로요.
- NASA는 이 정확도를 3600킬로미터 떨어진 홀에 퍼팅을 성공시키는 것에 비유했습니다.
☐ 12년 전에 종이 위에서 계산해 놓은 숫자가 12년 뒤 실제 우주에서 1초 차이로 맞아떨어졌다는 이야기입니다.
- 저는 이 대목이 늘 놀랍습니다.
- 물론 쉬운 계산은 아니었습니다.
- 목성과 토성의 중력을 빌려 속도를 얻었고 천왕성을 지난 뒤에는 두 시간 반 넘게 추력기를 분사해 궤도를 미세하게 고쳤습니다.
- 하지만 어렵다는 것과 불가능하다는 것은 다릅니다.
- 물리 법칙이 지배하는 세계는 복잡해도 결국 계산이 됩니다.
그런데 왜 내년 경제는 아무도 못 맞힐까요?
☐ 연말마다 내년 전망 기사가 쏟아집니다.
- 금리는 어떻게 되고 환율은 얼마가 되고 어떤 업종이 유망하다는 이야기들이요.
- 그런데 1년 뒤에 그 기사를 다시 꺼내 읽어보면 민망할 정도입니다.
- 변수가 너무 많아서일까요?
- 그것도 이유겠지만 전부는 아닐 겁니다.
- 보이저의 궤도 계산에도 변수는 충분히 많았습니다.
☐ 그 차이는 ‘행성에는 욕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 해왕성은 자기가 어디로 가고 싶은지 생각하지 않습니다.
- 기분이 나쁘다고 궤도를 바꾸지 않고, 옆 행성이 먼저 움직였다고 불안해하지도 않습니다.
- 그런데 시장에는 사람이 있습니다.
- 그리고 사람은 자기 이익조차 일관되게 계산하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같은 사실에 정답이 여러 개입니다
☐ 오늘 주가가 5% 떨어졌다고 해 보겠습니다.
- 이건 좋은 소식일까요? 나쁜 소식일까요?
- 데이트레이더에게는 정리해야 할 신호입니다.
- 하루 단위로 승부를 보는 사람에게 오늘의 하락은 그냥 손실입니다.
- 하지만 20년을 보고 매달 적립식으로 사 모으는 사람에게 같은 하락은 이번 달에 같은 돈으로 더 많은 수량을 살 수 있다는 뜻입니다.
☐ 둘 다 합리적입니다.
- 그런데 결론은 정반대입니다.
- 똑같은 숫자가 사람마다 다른 의미를 갖습니다.
- ‘지금 사야 할까요?’라는 질문에 정답이 없는 이유는 정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질문하는 사람마다 ‘하고 있는 게임’이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측은 대상을 바꿔놓습니다
☐ 보이저의 궤도를 아무리 정밀하게 계산해도, 그 계산 때문에 해왕성이 자리를 옮기지는 않습니다.
- 행성은 우리의 예보를 읽지 않으니까요.
☐ 그런데 “내년에 집값이 오른다”는 전망이 퍼지면 사람들은 지금 집을 삽니다.
- 그 행동 때문에 실제로 오르기도 하고, 반대로 모두가 미리 사버린 탓에 오르지 않기도 합니다.
☐ 예측이 빗나갔다기보다는, 예측이 세상에 개입해버린 겁니다.
- 이건 모델을 더 정교하게 만들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 구조 자체가 그렇습니다.
결국 사람의 욕구와 감정입니다
“수치 데이터와 논리에만 의지해 경제와 사회를 이해하려는 사람이라면 100년 내내 혼란과 충격에 빠져 허우적댔을 것이다.”
“경제적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유용성이나 이윤이 아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사람들이 원하느냐 원하지 않느냐가 중요하다. 경제와 관련한 수많은 행동 및 의사결정을 일으키는 근본 원인은 결국 인간의 욕구와 감정이다.”
- 모건 하우절, “불변의 법칙”
☐ 그러니 경제 예측이 자꾸 틀리는 건 경제학자들이 게을러서가 아닙니다.
- 애초에 다른 종류의 문제를 물리학처럼 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인가
☐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말이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라고 생각합니다. 못 맞힌다는 걸 인정해야 그다음 질문으로 넘어갈 수 있으니까요.
☐ “무슨 일이 일어날까”가 아니라 “무슨 일이 일어나도 버틸 수 있는가”.
- 저는 요즘 이 질문 쪽이 훨씬 쓸모 있다고 느낍니다.
- 앞의 질문은 답이 나올 수 없는 질문이고, 뒤의 질문은 지금 당장 손댈 수 있는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 NASA가 12년 뒤를 1초 오차로 맞힌 건, 계산이 정확해서만이 아니라 중간에 계속 궤도를 고쳤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 발사 시점의 계산 하나로 해왕성까지 간 게 아닙니다.
- 어긋난 만큼 추력기를 분사해 고치고, 또 고쳤습니다.
☐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도 그쪽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 사회 현상에는 사람의 욕구와 감정이 들어가 있어서 언제나 불확실하고,
- 그렇다면 처음부터 맞히려 들 게 아니라 어긋날 때마다 고쳐 나가는 편이 낫습니다.
- 그래서 저는 어느 쪽으로든 확신에 걸지 않으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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