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사람의 경제공부노트

먼저 온 아이보다 먼저 예약한 아이 -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한국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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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은 마이클 샌델이 2012년 출간한 책입니다.

  • 도덕적 가치까지 사고파는 시대, 시장의 역할은 대체 어디까지인가? 에 대한 내용으로
  • 이 책을 읽으면서 한국에서는 관련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생각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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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해 전, 한 소아과의 진료 안내 전광판 사진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 오후 2시경 도착한 아이는 기다리고 있고
  • 오후 3시경 도착한 아이는 진료실에 들어갔습니다.
  • 차이는 하나였습니다.
  • 늦게 온 아이는 예약 앱으로 미리 접수를 했고
  • 먼저 온 아이는 하지 않았다는 것.
  • 사진을 올린 사람은 “아픈 애들 데리고 뭐 하는 짓이냐”라고 적었습니다.

☐ 그런데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 장면에는 명확한 악당이 없습니다.

육아 필수앱

☐ 문제의 앱은 한 회사가 운영하는 병원 예약 서비스입니다.

  • 병원에 가지 않고도 모바일로 진료를 접수하고
  • 실시간 대기 순번을 확인할 수 있는 서비스입니다.
  • 누적 가입자가 1,000만 명을 넘었고 그 중 절반이 자녀 등 가족회원이며
  • 연결된 병의원은 1만 4천 곳에 달합니다.
  • 특히 소아과에서는 사실상 표준 인프라가 됐습니다.

☐ 왜 하필 소아과였을까요.

  • 아이들이 줄어드는 속도보다 동네 소아과가 사라지는 속도가 더 빨랐기 때문입니다.
  • 공급이 줄어드니 아침마다 접수 ‘오픈런’이 벌어졌고
  • 새벽부터 줄을 설 수 없는 부모들에게 원격 접수는 구원이었습니다.
  • 앱이 문제를 만든 것이 아니라, 필수의료 공백이라는 문제가 앱을 필수품으로 만든 셈입니다.

회사의 사정

☐ 2023년 9월, 이 회사는 월 1,000원(연 1만 원)의 구독형 서비스로 전환했습니다.

  • 논란이 일었지만, 회사의 사정을 보면 이해되는 면이 있습니다.
  • 이 회사의 연 매출은 20억 수준인데
  • 적자는 매년 수십억 원씩 쌓이고 있었습니다.
  • 회사는 “오래 서비스를 운영하기 위해” 유료화했다고 설명했습니다
  • 서버를 돌리고 병원 시스템과 연동을 유지하는 데는 돈이 듭니다.
  • 무료로 좋은 서비스를 영원히 제공하라는 요구야말로 시장 논리에 맞지 않습니다.

☐ 가격도 낮게 책정했습니다.

  • 배달비로 3000~4000원을 쓰는 시대에 월 1,000원입니다.

부모의 사정

☐ 그런데 이용자 쪽 사정도 똑같이 정당합니다.

  • 이 서비스는 배달앱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습니다.
  • 배달은 안 시키면 그만이지만, 아픈 아이의 진료는 안 받을 수가 없습니다.
  • 그리고 병원 중 상당수가 이 앱으로만 접수를 받게 되면서
  • 구독은 선택이 아니라 사실상 의무가 됐습니다.
  • “울며 겨자 먹기로 결제한다”는 표현이 나온 이유입니다.

☐ 더 곤란한 건 앱 바깥의 사람들입니다.

  • 스마트폰이 익숙하지 않은 조부모가 손주를 대리고 가면
  • 먼저 도착하고도 한없이 밀리는 일이 생깁니다.
  • 보건복지부가 “특정 방식만으로 예약을 받으면 진료 거부에 해당할 수 있다”며
  • 지자체에 관리·감독을 요청한 것도 이 지점이었습니다.

시장은 대부분 옳습니다, 그런데

☐ 경제학의 기본은 가격이 자원을 배분한다는 것입니다.

  • 원하는 사람은 많고 물건은 적을 때, 가격은 ‘누가 더 간절한가’를 돈으로 드러내게 해서 자원을 나눕니다.
  • 대부분의 영역에서 이 방식은 훌륭하게 작동합니다.
  • 콘서트든 명품이든, 더 비싼 값을 치를 의사가 있는 사람이 갖는 것에 우리는 크게 분노하지 않습니다.

☐ 그런데 어떤 재화 앞에서는 같은 메커니즘이 갑자기 불편해집니다.

  • 진료 순서가 그렇습니다. 이상하지 않나요?
  • 월 1,000원은 누구에게도 부담스러운 금액이 아닙니다.
  • 금액이 문제라면 이렇게까지 시끄러울 리가 없습니다.
  • 문제는 금액이 아니라, ‘무엇이 거래되고 있는가’에 있습니다.

센델의 답 : 사고파는 순간 변하는 것들

☐ 하버드의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정확히 이 불편함을 다룹니다.

  • 그는 시장 논리를 적용하면 안 되는 재화가 있다며 두 가지 이유를 듭니다.

☐ 첫째는 공정성입니다.

  • 돈을 기준으로 배분하는 순간, 지불 능력이 없는 사람은 배제됩니다.

☐ 둘째는 변질입니다.

  • 어떤 재화는 사고파는 대상이 되는 순간 그 가치 자체가 훼손된다는 것입니다.
  • 샌델이 드는 대표 사례가 바로 ‘줄’입니다.
  • 선착순의 줄에는 “먼저 온 사람이 먼저”라는 평등의 윤리가 담겨 있습니다.
  • 재산이 얼마든 줄 앞에서는 모두가 같은 시간을 지불합니다.
  • 그런데 순서를 돈으로 살 수 있게 되면, 줄은 평등의 장치에서 지불 능력의 서열표로 변합니다.
  • 줄이라는 재화의 성격 자체가 바뀌는 것입니다.

☐ 전광판의 분노는 여기서 나옵니다.

  • 우리는 아픈 아이의 진료 순서만큼은 ‘먼저 온 순서’ 아니면 ‘더 아픈 순서’로 정해져야 한다는 감각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 거기에 지불이라는 세 번째 기준이 끼어들었을 때
  • 그것이 단돈 1,000원이어도 사람들은 무언가 잘못됐다고 느낍니다.
  • 샌델식으로 말하면, 그 불편함은 비합리가 아리나 ‘시장의 도덕적 한계’를 감지한 신호입니다.

그래서 누구의 잘못?

☐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면, 이 이야기에 악당은 없습니다.

  • 회사도, 구독한 부모도, 심지어 앱으로만 접수받는 병원도 각자의 자리에서 합리적이었습니다.
  • 굳이 원인을 찾자면, 소아과라는 공공성 짙은 재화의 공급 부족을 시장이 알아서 메우도록 방치된 구조가 있을 뿐입니다.
  • 시장은 진공을 싫어해서, 제도가 비워둔 자리를 어김없이 채웁니다.
  • 다만 그 방식이 언제나 우리의 도덕적 감각과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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