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자전거를 탈 때 자전거 도로가 없으면 어쩔 수 없이 가장자리 차선을 이용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 차들은 자전거를 굳이 배려하지 않습니다.
- 그런데 도로교통법상 자전거는 엄연히 ‘차’입니다.
- 법은 차라고 하는데 도로 위에서는 차 대접을 받지 못합니다.
☐ 지위와 대우가 어긋나 있는 상태입니다.
- 보행자의 안전도 없고, 자동차의 권리도 없습니다.
- 규칙은 차와 똑같이 지켜야 하는데 보호는 그만큼 받지 못합니다.
☐ 차도를 이용하다 자동차가 부당한 행동을 하면 욕이 절로 나옵니다.
- 사소한 일에도 소리치지는 않지만 감정은 부글부글 끓는 것 같습니다.
- 걸어다닐 때는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 왜 유독 자전거 위에서만 반응성이 높아지는지 생각해봤습니다.
자전거를 탈 때 유독 화가 잘 나는 이유
1. 이미 각성 상태였습니다
☐ 페달을 밟는 동안 심박수는 올라가 있고 아드레날린도 어느 정도 돌고 있습니다.
- 이 신체적 각성은 그 자체로는 이름표가 없지요.
- 뭔가 사건이 터지는 순간 뇌가 거기에 “화남”이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 질만(Dolf Zillmann)의 흥분 전이 이론이라는 게 있습니다.
- 운동으로 올라간 각성이 직후의 도발에 대한 반응 강도를 키운다는 거죠.
- 그래서 사건의 크기와 감정의 크기가 안 맞습니다.
- 소파에 앉아 있다가 같은 일을 봤으면 “그러려니” 했을 일인데요.
2. 자전거는 실제로 무방비입니다
☐ 차나 오토바이가 앞을 막을 때 몸이 먼저 반응합니다.
- 판단보다 빠르게요.
- 자동차 운전자와 달리 자전거 위에는 껍데기가 없으니까 위협 신호가 훨씬 직접적으로 들어옵니다.
- 화는 그 공포 반응의 뒷면인 경우가 많습니다.
3. 사과할 통로가 없습니다
☐ 길에서 사람과 부딪히면 서로 “죄송합니다” 하고 끝납니다.
- 도로에서는 그 채널이 없습니다.
- 상대는 그냥 가 버리고, 나는 해소되지 않은 각성을 안고 계속 페달을 밟습니다.
- 갈 곳 없는 감정은 안에서 계속 도는 수밖에 없습니다.
4. 인정과 사과 사이의 간격
☐ 얼마 전 자전거를 타다가 오토바이가 앞을 막아섰습니다.
- 상대는 “에이”하고 짧게 한마디 하고는 그냥 갔습니다.
- 별일 아닌데 화가 오래 남았습니다.
☐ 그 짧은 소리가 무슨 뜻이었는지 나중에 생각해봤습니다.
- 자기도 뭔가 어긋난 걸 알기는 안다는 뜻입니다.
- 그런데 딱 그 정도로 처리하고 넘어간 겁니다.
- 아예 모르고 지나갔으면 차라리 나았을지도 모릅니다.
- 그건 그냥 무신경이니까요.
- 하지만 “에이”는 알면서 그만큼만 지불한 것에 가깝습니다.
- 내가 겪은 놀람의 크기와 상대가 내놓은 반응의 크기가 맞지 않고, 그 불일치를 상대가 일방적으로 정해 버렸다는 사실이 남습니다.
☐ 그리고 그 순간 관계가 정리됩니다.
- 나는 조심해야 하는 쪽이고, 상대는 조심하지 않아도 되는 쪽입니다.
걸어 다닐 때는 왜 그렇지 않을까
☐ 앞의 조건이 걷기에는 거의 해당되지 않습니다.
- 걸을 때는 심박수가 올라가 있지 않으니 자전거를 타는 정도의 각성 상태는 없습니다.
- 인도는 차도와 분리되어 있으니 위협 신호도 들어오지 않습니다.
- 사람끼리 부딪히면 서로 눈을 보고 사과하고 끝낼 수 있습니다.
☐ 자전거는 이 세 가지가 전부 반대입니다.
- 각성은 올라가 있고, 몸은 노출되어 있고, 사과할 통로는 없습니다.
- 성격이 급해진 게 아니라 조건이 달라진 것에 가깝습니다.
급한 게 아니라 부당한 것입니다
☐ 저는 제 성격이 급해진 줄 알았습니다.
- 그런데 급한 사람은 느린 것을 못 견디는 사람입니다.
- 도로 위에서 걸린 것은 속도가 아니라 부당함이었습니다.
- 결이 다른 감정이었습니다.
☐ 문제는 도로 위에서 이걸 바로잡을 방법이 사실상 없다는 점입니다.
- 상대는 이미 갔고, 따져봐야 상황만 나빠지고, 결국 내가 물러나는 것 말고는 선택지가 없습니다.
☐ 화는 발생했는데 처리할 곳이 없으면 안에 남습니다.
- 폭발적이라고 느껴지는 것은 아마 감정의 강도 때문이 아니라 그 잔여물 때문일 겁니다.
- 소리를 지르지 않았는데도 계속 끓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 법은 자전거를 ‘차’라고 부르지만 도로는 그렇게 대하지 않습니다.
- 그 어긋남 위에 올라탄 사람은 늘 조심하는 쪽에 서게 되고, 조심하는 쪽은 조심하지 않아도 되는 쪽의 태도를 반복해서 확인당합니다.
- 그 확인이 쌓이면 “에이” 한마디에도 몸이 먼저 반응합니다.
- 성격이 급해진 것이 아니라 급해질 수밖에 없는 자리에 놓여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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