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 진화하지 않으면 죽는다.”
“진화의 주기는 사람뿐만 아니라 국가, 기업, 경제 등 모든 것에 적용된다. 진화의 주기는 부분이 아니라 전체로서 자기 수정(self-correction)의 과정이다.”
- 레이 달리오, “원칙”
☐ 제가 “원칙”을 봤을 때 인상 깊게 봤던 구절 중 하나입니다.
- 그래서 한번 자세히 조사해봤습니다.
☐ 왜 진화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일까요?
- 환경이 가만히 있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 만약 세상이 고정된 무대라면 굳이 계속 변할 이유가 없습니다.
- 한번 잘 맞는 형태를 찾으면 그 자리에 눌러 앉으면 됩니다.
☐ 문제는 무대 자체가 다른 배우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입니다.
- 내가 멈춰 있는 동안 포식자도 진화하고 먹이도 진화하고 경쟁자도 진화합니다.
- 1973년 진화 생물학자 리 벤 베일런은 화석 기록을 분석하다가 이상한 규칙성을 발견했습니다.
- 어떤 종이 이미 얼마나 오래 살아남았든 앞으로 멸종할 확률은 거의 일정했습니다.
☐ 우리는 오래 버틴 것일수록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 20년 된 회사가 2년 된 회사보다 튼튼하다고 믿는 것처럼요.
- 그런데 화석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 경험이 쌓여도 위험은 줄지 않았습니다.
- 벤 베일런은 여기에 ‘붉은 여왕 가설’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붉은 여왕이 앨리스에게 한 말, “같은 자리에 있으려면 있는 힘껏 달려야 한다”는 그 말에서 따왔습니다.
진화는 죽음을 통해서만 작동합니다
☐ 지금까지 지구에 존재했던 종의 99% 이상이 이미 멸종했다는 추정이 있습니다.
- 정확한 숫자는 논쟁적이지만, 방향은 분명합니다.
- 살아남은 쪽이 예외이고 사라진 쪽이 정상입니다.
- 진화의 역사는 성공한 설계도의 목록이 아니라, 압도적으로 실패한 설계도들의 무덤 위에 얹힌 얇은 층입니다.
☐ 그러니까 진화 입장에서 죽음은 버그가 아닙니다. 기능입니다.
☐ 왜 그런지는 진화가 굴러가는 방식을 뜯어보면 분명해집니다.
- 진화에는 변이와 선택이 필요하다고들 하는데, 여기서 ‘선택’은 누가 골라주는 행위가 아닙니다.
- 안 맞는 것이 사라지는 일입니다.
- 아무것도 죽지 않으면 변이는 계속 쌓이기만 하고 방향이 생기지 않습니다.
☐ 적응이란 결국 어떤 형질의 비율이 바뀌는 일인데, 비율은 무언가가 없어져야만 바뀝니다.
☐ 6600만 년 전 공룡이 사라지기 전까지 포유류는 대체로 작고 눈에 띄지 않는 동물이었습니다.
- 그 뒤에 포유류가 갑자기 유능해진 것이 아닙니다.
- 자리가 비었을 뿐입니다.
☐ 개체 입장에서 진화는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지만
- 시스템의 입장에서 개체의 죽음은 적응이 안 된 것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새로운 다른 것이 채워지는 과정일 뿐입니다.
그러면 경제는 성장할 수밖에 없을까
☐ 여기서부터가 제가 원래 생각하던 지점이었습니다.
- 어쨌든 세상은 더 나은 방향으로 굴러가고 총생산량은 확장되고 부는 증대됩니다.
- 그러면 결국 경제는 성장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 국가가 망한다는 쪽에 베팅하지 않는다면 남는 선택지는 우상향뿐인 것 아닌가.
- 지금도 대체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 다만 서기 1년 무렵 세계 1인당 연소득은 800달러 수준으로 추정되고
- 그 뒤로 천 년 동안 거의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 1800년은 1140달러입니다. 1800년동안 40% 정도 늘어난 셈입니다.
- 그런데 1800년부터 1900년까지 단 100년 만에 2180달러가 됩니다.
- 앞선 1800년이 한 세기에 추월당했습니다.
그러면 지수가 우상향하는 이유는?
☐ 매디슨 데이터에서 1인당 소득이 지속적으로 오르기 시작하는 지점이 1820년경이고
- 지금이 2026년이니 약 200년입니다.
☐ 200년 동안 우상향이 지속된 이유는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 1896년 찰스 다우가 지수를 만들었을 때 편입된 회사는 12개였습니다.
- 미국 최고의 기업들이었습니다.
- 오늘 그중에 남아 있는 회사는 하나도 없습니다.
- 가장 오래 버틴 것이 제너럴 일렉트릭이었는데 주가가 무너지면서 2018년 6월 26일 마지막 원년 멤버 자리에서 내려왔습니다.
- 그 자리는 월그린이 채웠습니다.
☐ 함께했던 미국 가죽회사, 증류회사, 축우회사 같은 이름들은 이제 아무도 기억하지 않습니다.
- 그러니까 다우가 130년 동안 우상향한 것은 처음 뽑힌 12개 회사가 잘해서가 아닙니다.
- 못 하는 회사를 계속 갈아치웠기 때문입니다.
- 다우는 1928년부터 30개 자리로 고정돼 있습니다.
☐ 자리가 고정이라는 건, 새로 들어오려면 반드시 누군가 나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 2015년 애플이 편입될 때 AT&T가 나갔습니다.
- 편출 없이는 편입도 없습니다.
- 앞에서 본 진화의 문법이 여기서 그대로 반복됩니다.
☐ 지수는 진화의 결과물이 아니라 진화 장치 그 자체입니다.
- 지수는 부분을 죽이면서 전체를 살립니다.
- 달리오가 말한 전체로서의 자기 수정(self-correction)이 매 분기 편입과 편출이라는 형태로 실제 집행되고 있는 셈입니다.
그래서 저는
☐ 여전히 우상향에 베팅합니다.
- 바뀐 것은 베팅의 이유입니다.
- 예전에는 ‘세상은 좋아지니까’라고 생각했습니다.
- 지금은 ‘못하는 것을 계속 잘라내는 장치가 돌아가고 있으니까’라고 생각합니다.
- 앞의 문장은 낙관이지만 뒤의 문장은 구조에 대한 설명입니다.
☐ 그래서 개별 종목에 몰빵하는 것이 왜 위험한지 이제야 조금 알겠습니다.
- 그건 자기 수정 장치를 사는 게 아니라, 그 장치가 언젠가 잘라낼지도 모르는 부분 하나를 사는 일이니까요.
☐ 기업 입장에서 보면, 진화하지 않으면 지수에서 빠지고, 빠지면 결국 죽음에 이릅니다.
- 그래서 끊임없이 달려야 합니다.
- 붉은 여왕이 앨리스에게 한 말이 은유가 아니라 그냥 현실 설명이었던 셈입니다.
- 지수를 사는 저는 그 장치의 바깥에 서 있는 것 같지만
- 회사에서도 제 일에서도 저 역시 누군가의 지수 안에 들어 있는 하나의 부분입니다.
- 참 무서운 세상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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