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사람의 경제공부노트

미안함을 돈으로 바꾸면 생기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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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칙은 만든 사람의 의도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 무언가를 결정하고 규정을 하나 만들 때가 있습니다.

  • 그것이 나 혼자 지키는 원칙이라면 별문제가 없습니다.
  • 안 지켜도 나만 알고, 고쳐도 나만 알면 되니까요.
  • 문제는 그 규정이 다른 사람에게 적용될 때입니다.
  • 규칙 하나를 만들면 의도한 효과 하나만 생기지 않습니다.
  • 생각지도 못한 부가 효과(side effect)가 함께 따라옵니다.
  • 그리고 대개 그 부가 효과가 더 오래 남습니다.

어린이집에 벌금을 매기면 어떻게 될까요?

☐ 어린이집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 6시까지 도착해서 아이를 데려가야 하는데 부모가 늦습니다.
  • 선생님은 퇴근을 못 하고 기다립니다.
  • 늦게 도착한 부모는 미안해합니다.
  • 이 미안함이 사실은 유일한 강제 장치입니다.

☐ 그래서 원장님이 이렇게 생각합니다.

  • 미안한 마음만으로는 부족하니 벌금을 매기자.
  • 5분 늦을 때마다 5000원.
  • 상식적으로는 지각이 줄어야 합니다.

☐ 그런데 실제로 이 실험을 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 1998년 이스라엘 하이파의 사립 어린이집 10곳에서 진행된 현장 실험입니다.

  • 처음 4주는 아무것도 바꾸지 않고 지각 횟수만 셌습니다.
  • 5주 차부터 10곳 중 6곳에만 벌금을 도입했고, 나머지 4곳은 대조군으로 두었습니다.
  • 벌금은 10분 이상 늦을 경우 한 아이당 10셰켈(당시 환율로 3달러 남짓, 우리 돈 약 4000원)이었습니다.
  • 벌금은 그 자리에서 내는 게 아니라 월 청구서에 추가되었고, 기다린 교사가 아니라 원장에게 갔습니다.

☐ 그 결과는 예상과 반대였습니다.

  • 벌금을 도입한 곳에서 지각이 줄기는 커녕 늘었습니다.
  • 최종적으로는 대략 두 배 수준에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 벌금이 없던 4곳은 변화가 없었습니다.

☐ 더 놀라운 건 그 다음입니다.

  • 17주 차에 연구진은 벌금을 없앴습니다.
  • 그런데 지각률은 원래 수준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 높아진 채로 유지됐습니다.

☐ 논문 제목이 그대로 결론입니다.

  • “벌금은 가격이다(A Fine is a Price)”
  • 벌금을 매기기 전까지 부모에게 지각은 잘못이었습니다.
  • 벌금을 매기는 순간 지각은 3달러짜리 서비스가 되었습니다.
  • 미안하면 사라지고 돈을 냈으니 됐다는 감각이 그 자리를 대신했습니다.
  • 원장님이 산 것은 정시 하원이 아니라, 늦어도 되는 권리를 파는 가격표였습니다.

4시간만 넘기지 않으면 됩니다

☐ 부가 효과가 더 극적으로 나타난 사례가 영국에 있습니다.

“영국에서는 응급 병동의 대기 시간을 줄이기 위해 보건부에서 대기 시간이 4시간을 넘어가는 병원을 징계하도록 하는 정책을 채택했다. 이 프로그램은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성공을 거두었다. 실제로, 이 정책 때문에 일부 병원에서는 환자를 실은 구급차를 줄줄이 병원 문 밖에 세워 두고 정해진 4시간 내에 환자의 입원이 가능하다고 판단될 때까지 기다리게 했다.”

  • 제리 멀러, “성과지표의 배신”, 2020

☐ 영국의 NHS(국민보건서비스)의 이른바 ‘4시간 목표’는 2004년부터 본격 시행되었습니다.

  • 응급실에 도착부터 이번 전원 퇴원까지 4시간 안에 끝내야 한다는 기준이었고, 처음에는 98%를 요구했다가 2010년에 95%로 조정됐습니다.

☐ 여기서 핵심은 시계가 도착한 순간부터 돈다는 점입니다.

  • 병원 입장에서 이 규칙을 가장 확실하게 지키는 방법은 진료를 빨리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 아직 받을 준비가 안 됐으면 환자를 도착시키지 않으면 됩니다.
  • 그래서 구급차가 응급실 문 앞에 줄을 섰습니다.
  • 환자는 병원에 와 있지만 통계상으로는 아직 오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 마감 직전에 임상적으로 꼭 필요하지 않은 입원 결정이 몰리는 현상도 함께 관찰됐습니다.

☐ 이 정책이 실패이기만 했던 건 아닙니다.

  • 후속 연구에서는 4시간 목표가 실제로 대기 시간을 크게 줄였고 사망률로 유의미하게 낮췄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 그러니까 이건 나쁜 규칙의 사례라기보다 좋은 의도로 만든 규칙조차 반드시 부가 효과를 데리고 온다는 사례에 가깝습니다.

사람은 규칙의 내용이 아니라 신호를 읽습니다

☐ 두 사례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 규칙이 생기기 전 그 자리에는 규칙이 아닌 것들이 있었습니다.
  • 어린이집에는 ‘미안함’이 있었고 응급실에는 ‘의료진의 판단’이 있었습니다.
  • 명문화되어 있지 않았을 뿐, 그것들이 실제로 행동을 통제하고 있었습니다.

☐ 그런데 새로운 규칙이 정해지는 순간 원래 있었던 것을 밀어냅니다.

  • “얼마를 내면 되는가”가 정해지는 순간 “그래도 되는가”라는 질문은 사라집니다.
  • “무엇이 측정되는가”가 정해지는 순간 “무엇이 중요한가”는 뒤로 밀립니다.

☐ 어떤 지표가 목표가 되는 순간 그 지표는 좋은 지표가 안된다는 것이죠.

  • 우리는 규칙을 만들면서 “이걸 잘 지키는 사람”을 상상하지만
  • 규칙이 실제로 만들어 내는 사람은 이걸 읽고 “자기에게 유리한 해석을 찾아내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저는 ‘임시’라는 말을 붙입니다

☐ 사람이 얽혀 있는 규정은 안 들어보기 전에는 어떤 부작용이 나올지 알 수 없습니다.

  • 그렇다고 아예 만들지 않을 수는 없죠.

☐ 그러면 되돌릴 수 있는 형태로 만들려고 합니다.

  • 규칙에 조건을 붙입니다.
  • “일단 테스트로”, “이번 달까지만”, “3개월 시범 운영”, “우선 상한선은 여기까지”
  • 이렇게 하면 받는 쪽도 “아직 확정된 게 아니구나”라고 느낍니다.

☐ 이게 실제로 줄여 주는 건 부작용 자체가 아니라 방향을 바꿀 때의 부담입니다.

  • 규칙을 거두는 일이 실패 인정이 아니라 예정된 종료가 되기 때문입니다.
  • 만든 사람 체면도 지키고 지키던 사람도 번복당했다는 느낌을 덜 받습니다.

☐ 다만 여기에도 한계가 있다는 걸 하이파 실험이 알려줍니다.

  • 벌금을 없애는데도 지각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 되돌리기 쉬운 것은 규칙이지, 이미 바뀐 사람의 인식이 아닙니다.
  • 그러니 임시 조건은 안전 장치라기보다는 완충재에 가깝습니다.
  • 관계의 성격을 성격 자체를 바꿔 버리는 수단, 특히 돈으로 잘못을 계산하게 만드는 방식은 되도록 마지막에 꺼내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치며

☐ 정말 사람의 생각과 욕망이라는 건 예측 불허라서, 영국의 사례처럼 전혀 상상하지 못한 형태로 튀어나오기도 합니다.

  • 규칙을 만든 사람은 아무도 구급차를 세워두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4시간이라는 숫자 하나를 정했을 뿐입니다.

☐ 혹시 만들고 계신 규칙이 있다면, 한 번쯤 이렇게 물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 이 규칙을 가장 영리하게 악용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무엇을 할까요.

SPELL QUEST · 문장 수선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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