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표에는 죄가 없습니다. 문제는 걸린 판돈입니다
☐ 어떤 일을 관리하려면 숫자가 필요합니다.
- 숫자가 없으면 잘하고 있는지 못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으니까요.
- 그래서 우리는 지표를 만듭니다.
- 매출, 방문자 수, 응답 시간, 시험 점수.
- 여기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 문제는 그 숫자에 무엇을 걸어 두느냐입니다.
- 지표를 그냥 참고만 한다면 사람은 그 숫자를 정직하게 봅니다.
- 그런데 그 숫자에 성과급이 걸리고, 승진이 걸리고, 해고가 걸리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보상을 성과 측정과 연계할 때 측정 강박은 꼼수를 불러오게 된다.”
- 제리 멀러, “성과지표의 배신”
☐ 측정만으로는 꼼수가 나오지 않습니다.
- 보상이 연계될 때 나옵니다.
- 그러니까 지표를 만들면서 우리가 진짜로 결정하는 건 무엇을 잴 것인가가 아니라 그 숫자에 무엇을 걸 것인가입니다.
여덟 개를 팔지 못하면 잘립니다
☐ 미국 웰스파고 은행 이야기입니다.
- 이 은행은 고객 한 명에게 여러 금융 상품을 끼워 파는 ‘교차 판매’를 핵심 전략으로 삼았습니다.
- 목표는 고객 한 명당 상품 8개. 사내 구호는 “Eight is great”였습니다.
- 문제는 이게 애초에 달성 가능한 목표가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 웰스파고가 나중에 스스로 낸 내부 조사 보고서에는
- 경영진이 전체 지역의 절반 정도만 달성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세운 목표라고 나왔습니다.
- 그런데 압박은 절반이 아니라 전원에게 갔습니다.
☐ 그래서 직원들은 답을 찾았습니다.
- 고객들이 모르는 사이에 계좌를 만들고, 카드를 발급하고, 대출 상품에 가입시켰습니다.
- 2016년 규제 당국이 확인한 무단 개설 계좌는 약 210만 건, 이듬해 조사 범위를 넓히자 최대 350만 건이 됐습니다.
- 은행은 규제 당국에 1억 8500만 달러(당시 환율로 약 2천억 원)를 냈고, 소매 부문 직원 약 5300명을 해고했습니다.
☐ 5300명은 나쁜 사람이었을 리 없습니다.
- 이 정도 규모면 개인의 윤리 문제가 아니라 그 환경에 놓인 사람의 평균적인 반응에 가깝습니다.
- 절반은 실패하도록 설계된 목표를 주고 그 숫자에 생계를 걸어 두면, 대다수는 결국 숫자를 만들어 내는 쪽을 택합니다.
캠벨의 법칙
☐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도널드 캠벨은 1976년에 아래와 같이 정리했습니다.
- 정량적 지표가 사회적 의사 결정에 많이 쓰일수록 그 지표는 부패의 압력에 취약해지고, 원래 관찰하려던 과정 자체를 더 심하게 왜곡시킨다는 것입니다.
☐ 여기서 중요한 건 ‘많이 쓰일수록’입니다.
- 지표가 나쁘다는 게 아니라, 지표에 걸린 판돈이 커질수록 나빠진다는 이야기입니다.
숫자가 되면서 잘려 나가는 것들
☐ 데이터가 되려면 맥락이 잘려 나가야 합니다.
- 시험 점수 82점이 나오면 그 아이가 어떻게 82점을 받았는지는 숫자 안에 없습니다.
- 위 계좌 한 건도 고객이 원한 것인지 직원이 몰래 만든 것인지는 숫자 안에 없습니다.
- 정직하게 만든 100과 조작해서 만든 100은, 데이터로 올라가는 순간 완전히 같은 물건이 됩니다.
☐ 강한 지표가 걸린 조직에서는 정직한 사람이 먼저 손해를 봅니다.
- 규칙을 지키는 사람은 목표를 못 채웁니다.
- 꼼수를 쓰는 사람은 목표를 채우고 승진합니다.
- 시간이 지나면 정직한 사람은 그만두거나, 밀려나거나, 배웁니다.
☐ 여기서 무서운 건 아무도 나쁜 마음을 먹지 않았는데 조직 전체가 그 방향으로 이동한다는 점입니다.
- 각자 자기 자리를 지키려 했을 뿐인데, 그 자리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 숫자를 만드는 것이라면
- 숫자를 만드는 사람만 자리에 남게 됩니다.
지표를 안 만들 수는 없습니다
☐ 숫자 없이 관리되는 조직은 없기 때문입니다.
☐ 지표를 만드는 사람은 대개 선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 하지만 보상과 불이익이 클수록 지표 달성을 위해 꼼수를 쓸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 숫자에서 맥락이 빠지는 것은 표준화의 어쩔 수 없는 감수할 부분이기는 하지만
- 어떻게 보면 숫자를 챙기면서도 또 맥락도 같이 보려고 꾸준히 노력하는 방법이 차선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이건 조직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 저도 아주 작은 규모로 같은 일을 겪었습니다.
-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조회수가 목표가 되기도 했습니다.
- 그러자 생각의 방향이 조금씩 바뀌더군요.
- 내가 관심이 있어서 오래 붙잡고 있을 수 있는 주제를 찾는 대신, 어떻게 하면 제목을 잘 뽑을까, 사람들이 좋아하는 건 뭘까를 먼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그런데 결말은 좀 달랐습니다.
- 조회수가 올라간다고 해서 그게 성과나 보상으로 연결되는 구조는 아니었습니다.
- 그러니까 저에게는 꼼수를 쓸 이유가 없던거죠.
- 대신 흥미가 떨어졌고, 그러다 보니 동기 자체가 사라졌습니다.
☐ 보상이 걸려 있으면 사람은 숫자를 만들어 냅니다.
- 보상이 없으면 숫자를 만들지는 않습니다.
- 다만 그 숫자를 좇는 동안 원래 있던 것을 잃습니다.
- 웰스파고에서 밀려난 것이 정직이었다면, 저에게서 밀려난 것은 흥미였습니다.
“초등교육을 예로 들면 읽기와 쓰기, 산술 같은 교육은 표준화된 시험을 통해 감시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바람직한 행동 심어주기, 세계에 대한 호기심 불어넣기, 창의적 사고 기르기처럼 측정하기는 어렵지만 못지않게 중요한 목표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 제리 멀러, “성과지표의 배신”
☐ 조회수는 잴 수 있고 흥미는 잴 수 없습니다.
- 그래서 잴 수 없는 쪽이 먼저 밀려났습니다.
그래서 목표를 바꿨습니다
☐ 지금 제 목표는 그냥 ‘꾸준히 쓴다’입니다.
- 조회수는 제가 통제할 수 없지만, 오늘 한 편 쓰는 건 통제할 수 있습니다.
- 그리고 이 지표에는 꼼수를 쓸 방법이 없습니다. 쓰거나 안 쓰거나 둘 중 하나니까요.
☐ 물론 조회수를 아예 안 보지는 않습니다.
- 다만 그건 확인하는 숫자이지, 달성하는 숫자가 아닙니다.
- 결국 지표를 없애는 게 아니라 판돈을 내려놓는 쪽에 가깝습니다.
- 숫자를 좇는 동안 잃어버린 건 무엇인지 가끔 생각해볼 일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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