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주변에서 항상 힘들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 저도 자주 합니다.
- 그리고 그 대화는 대체로 비슷한 곳에서 끝납니다.
- “우리 그냥 욕심 좀 내려놓고 편하게 살면 안 되나.”
- 서로 위로가 되는 말이라서 그 문장으로 대화를 닫습니다.
- 그런데 그렇게 말하고 헤어진 다음 날, 각자 다시 원래 하던 걱정으로 돌아가 있습니다.
- 왜 그럴까를 생각해 봤습니다.
경험치는 경험을 통해서만 들어옵니다
☐ 목표가 지금 내 위치보다 한참 위에 있다면, 그 사이의 간격은 결국 경험으로 메울 수밖에 없습니다.
- 다른 방법이 있으면 좋겠는데 아직 못 찾았습니다.
- 책을 읽고 강의를 듣는 것으로 조금 앞당길 수는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한참 부족합니다.
☐ 문제는 성장에 실제로 기여하는 경험이 대체로 잘 풀린 경험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 잘된 일은 왜 잘됐는지 굳이 따져 보지 않습니다.
- 기분이 좋고, 다음 일로 넘어갑니다.
- 반면 어긋난 일은 오래 붙잡고 있게 됩니다.
- 그 붙잡고 있는 시간이 불쾌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고통이라고 부릅니다.
☐ 그러니까 순서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목표가 높은 곳에 있으면 경험이 필요하고
- 필요한 경험의 상당 부분은 잘 안 풀린 경험이며
- 잘 안 풀린 경험은 필연적으로 아픕니다.
고통은 해법을 찾으라는 신호라고 합니다
“당신이 야심찬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면 고통을 피할 방법은 없다. 믿을 수도 있고, 믿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고통에 올바르게 접근한다면 그런 고통을 느끼는 것은 운이 좋은 것이다.”
- 레이 달리오, 『원칙』
☐ 이 문장에서 제일 중요한 건 ‘올바르게 접근한다면’이라는 단서입니다.
- 달리오는 이 단서를 하나의 공식으로 정리했습니다.
- Pain + Reflection = Progress. 고통에 성찰을 더해야 발전이 된다는 것입니다.
- 왼쪽 항만 있으면 식이 성립하지 않습니다.
☐ 고통 자체는 성장의 원인이 아니라 재료일 뿐입니다.
- 이 부분을 빼놓으면 ‘힘들어야 성장한다’는 별로 도움이 안 되는 말이 됩니다.
- 실제로 우리 주변에는 충분히 고통스러운데 전혀 나아지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 성찰 단계를 건너뛰었기 때문입니다.
☐ 달리오 본인이 그렇게 배웠다고 합니다.
- 시장 예측이 크게 빗나가면서 회사가 사실상 무너졌고, 그는 가족 생활비를 감당하려고 아버지에게 4000달러를 빌려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 그 시기를 견디기만 했다면 그건 그냥 손실로 끝났을 겁니다.
- 무엇이 그 실패를 만들었는지 분해하고 다음에 같은 상황에서 다르게 행동할 원칙을 뽑아냈기 때문에 경험치가 된 것입니다.
☐ 그런데 이게 실무에서는 잘 안 됩니다.
- 달리오도 같은 지적을 합니다.
- 대부분의 사람은 고통 속에 있을 때는 성찰할 여력이 없고, 고통이 지나가면 다른 일에 신경 쓰느라 교훈을 놓친다는 것입니다.
☐ 저도 그랬습니다.
- 일이 터지면 수습에 모든 에너지를 쓰고, 수습이 끝나면 다음 일 때문에 아무것도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 그리고 반년 뒤에 또 비슷한 일을 겪었습니다.
- 고통의 총량은 계속 늘어나는데 발전은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면 욕망을 내려놓으면 되지 않을까요
☐ 여기까지 오면 자연스럽게 나오는 반문이 있습니다.
- 그렇게 아파야 한다면 목표를 낮추면 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 저도 이 선택지를 진지하게 생각해 봤습니다.
- 그런데 실행 가능성을 따져 보니 생각보다 훨씬 까다로운 선택지였습니다.
☐ 비교가 의지로 끌 수 있는 스위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 길버트 연구팀의 1995년 실험이 이 점을 보여줍니다.
- 참가자들은 비교해 봐야 의미가 없다는 걸 알고 있는 상황에서도 비교를 했고, 나중에 그 비교를 머릿속에서 취소했을 뿐입니다.
- 연구진은 사회적 비교가 상당히 자동적이고 노력이 들지 않는 반응이며, 스스로 부적절하다고 판단하는 상황에서도 일어난다고 결론지었습니다.
☐ 비교가 자동으로 일어난다면, 내 기준선도 자동으로 조정됩니다.
- 그리고 한국에서 그 기준선은 꽤 높은 곳에 형성되어 있습니다.
- 남들이 사는 동네, 남들이 아이를 보내는 학원, 남들이 타는 차, 남들이 올리는 여행 사진이 계속 들어옵니다.
- 순수하게 생존에 필요한 돈보다 이 기준선을 유지하는 데 드는 돈이 훨씬 큽니다.
- 흔히 품위유지비라고 부르는 항목입니다.
☐ 그래서 ‘적당히 편하게 살자’는 실행 단계에서 이런 뜻이 됩니다.
- SNS를 끊고, 잘나가는 지인들 모임에 나가지 않고, 명절에 친척들과 근황을 나누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즉 욕망을 줄이는 게 아니라 비교의 장 자체에서 물리적으로 걸어 나오겠다는 선언입니다.
- 그건 가능한 선택이지만 결코 ‘편한’ 선택은 아닙니다.
- 관계를 상당 부분 정리해야 하니까요.
결국 남는 것
☐ 정리하면 우리 앞에는 대략 세 갈래가 있습니다.
- 야심찬 목표를 유지하고, 그에 따르는 고통을 성찰의 재료로 쓰면서 나아가는 길
- 목표를 실제로 낮추고, 그 대가로 비교의 장에서 걸어 나오는 길
- 목표는 그대로 두고 고통만 피하려는 길
☐ 세 번째가 제일 흔하고, 제일 괴롭습니다.
- 기준선은 남들 것을 그대로 쓰면서 그 기준선에 도달하는 데 필요한 경험은 회피하니까, 격차는 그대로인데 아프기만 합니다.
- 게다가 이 고통에는 성찰이 붙지 않습니다.
- 회피하고 있는 중이라 들여다볼 대상 자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 발전 없는 고통은 그냥 소모입니다.
☐ 야심찬 목표를 갖는 것과 고통을 피하는 것은 함께 가질 수 없습니다.
- 둘 중 하나는 놓아야 하고, 어느 쪽을 놓든 대가가 있습니다.
-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하게 정직한 일은 어느 쪽 대가를 치를지 스스로 정하는 것뿐이지만, 그것도 생각보다 힘든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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