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실수는 아픕니다.
- 그래서 보고 싶지 않습니다.
- 그런데 보지 않으면 다음에도 같은 자리에서 넘어집니다.
☐ 여기까지는 누구나 압니다.
-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 저는 실수를 안 보고 넘어간 적보다, 오래 붙들고 있었는데도 똑같이 반복한 적이 훨씬 많았습니다.
실패와 실수는 다른 것입니다
☐ 먼저 두 말을 구분해 두겠습니다.
- 실패는 결과입니다.
- 잘해도 실패할 수 있고, 운이 크게 섞입니다.
☐ 실수는 행위입니다.
- 그 시점에 다르게 행동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 이 둘을 붙여 놓으면 이야기가 흐려집니다.
- 실패에는 위로가 필요하지만, 실수에는 점검이 필요합니다.
- 위로가 필요한 자리에 점검을 들이밀면 잔인해지고, 점검이 필요한 자리에 위로만 놓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습니다.
☐ 이 글은 뒤쪽, 그러니까 실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자책은 복기처럼 느껴집니다
☐ 실수를 되돌아본다는 건 내가 싫어하는 버전의 나를 마주하는 일입니다.
- 그래서 복기를 시작하려던 마음이 자주 자책으로 미끄러집니다.
☐ 자책은 겉보기에 책임을 지는 태도처럼 보입니다.
-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보는 것 같고, 무엇보다 괴롭기 때문에 뭔가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 그런데 자책은 사건을 감정으로 종결시킵니다.
- “내가 왜 그랬을까?”를 며칠 반복하고 나면 충분히 괴로웠다는 감각이 남고, 그 감각이 사건을 닫아 버립니다.
- 원인 분석은 시작조차 되지 않았는데 마음속에서는 이미 처리가 끝난 것입니다.
☐ 그래서 자책을 오래 한 사람일수록 같은 실수를 반복합니다.
- 성의가 없어서가 아니라 성의를 엉뚱한 곳에 다 써 버렸기 때문입니다.
☐ 구분법은 간단합니다.
- 자책은 사람을 다룹니다. “나는 왜 이 모양일까?”
- 복기는 상황을 다룹니다. “그때 어떤 정보가 없었고, 어떤 판단을 했나?”
☐ 되돌아본 뒤에 남는 게 문장이 아니라 기분이라면, 그건 복기가 아니었을 겁니다.
복기는 상황을 재구성하는 일입니다
☐ 복기를 잘하는 방법이 따로 있다기보다 자책으로 새지 않게 질문을 고정해 두는 편이 낫습니다.
-
그 시점에 내가 알고 있던 것은 무엇이었나?
-
지금 아는 것으로 그때를 판단하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
다르게 할 수 있는 갈림길이 실제로 있었나?
-
없었다면 그건 실수가 아니라 그냥 나쁜 결과입니다.
-
그 갈림길에서 나를 그쪽으로 밀었던 게 무엇이었나?
-
피곤함이었는지,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이었는지, 확인을 생략한 습관이었는지.
-
같은 조건이 다시 오면 무엇이 달라져 있어야 하나.
☐ 마지막 질문의 답이 “더 조심하겠다”로 나오면 복기가 덜 된 것입니다.
- 조심은 상태이지 장치가 아니라서 컨디션이 나쁜 날 제일 먼저 사라집니다.
- 답은 확인 절차 하나, 체크리스트 한 줄, 시간 배치 변경처럼 나중의 나를 믿지 않아도 되는 형태로 나와야 합니다.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는가
☐ 이 질문이 어려운 이유는 서로 다른 세 가지가 한 덩어리로 붙어 있기 때문입니다.
☐ 첫째는 결과에 대한 책임입니다.
- 수습하고, 사과하고, 손해를 메우는 일입니다.
- 이건 내가 정하는 게 아니라 피해를 본 쪽이 정합니다.
- 내 기준으로 “이만하면 됐다”고 판단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 둘째는 원인에 대한 책임입니다.
- 왜 그랬는지 찾아서 다음을 바꾸는 일입니다.
- 이건 전적으로 제 몫이고 사실상 제가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영역입니다.
☐ 셋째는 인격에 대한 책임입니다.
-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다”라는 판정입니다.
- 그런데 이건 애초에 책임이 아닙니다.
- 갚을 방법도 없고 끝나는 지점도 없습니다.
☐ 문제는 대부분의 시간이 셋째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 결과 수습은 대충 하고, 원인 분석은 건너뛰고, 인격 심판만 길게 합니다.
- 그러고 나면 사건은 그대로인데 사람만 상해 있습니다.
모든 실수에서 배울 필요는 없습니다
☐ 여기에 하나 덧붙이고 싶습니다.
- 성찰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닙니다.
- 다시 오지 않을 상황에서 뽑아낸 교훈은 규칙만 늘립니다.
- 우연에 가까운 일까지 원인을 만들어 내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패턴에 대비하느라 판단이 무거워집니다.
☐ 그래서 복기할 실수를 고를 때 두 가지를 봅니다.
- 반복 가능성. 비슷한 상황이 또 올 만한가.
- 통제 가능성. 내가 바꿀 부분이 실제로 있었나.
☐ 둘 다 낮으면 그냥 넘겨야 합니다. 넘기는 것도 결정입니다.
마무리
☐ 실수를 오래 들여다보는 것과 제대로 들여다보는 것은 다릅니다.
- 아파하는 시간의 길이는 개선의 크기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 되돌아본 뒤에 남아야 할 것은 나에 대한 판정이 아니라, 다음번에 작동할 장치 하나입니다.
- 그게 남지 않았다면 아직 아무것도 배우지 않은 것이고, 그게 남았다면 기분이 얼마나 나쁘든 그 실수는 제 몫을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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