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창업생활

불안이 발전을 낳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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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이 일을 하게 만드는 건 사실입니다.

  • 이 명제는 일단 경험적으로 맞는 것처럼 보입니다.
  • 마감이 눈앞에 닥치면 며칠을 미뤄 두던 일이 하루 만에 끝납니다.
  • 매출 숫자가 떨어지면 그제야 안 보던 지표를 들여다보게 됩니다.
  • 남들이 앞서 간다는 느낌이 들면 미뤄졌던 공부를 시작합니다.

☐ 불안하면 더 생각하고, 더 일하고, 더 해결책을 찾습니다.

  • 여기까지는 반박할 생각이 없습니다.
  • 그래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다음 결론으로 넘어갑니다.
  • 불안이 클수록 성취도 커진다는 것입니다.

그때 일을 시킨 게 정말 불안이었을까요

☐ 마감 하루 전날 하루 만에 끝낸 일을 다시 떠올려 보면 그날 달라진 게 불안 하나만은 아닙니다.

  • 선택지가 사라졌습니다. 다른 걸 할 시간이 없으니 그 일만 하게 됩니다.
  • 기준이 내려갔습니다. 완벽하게 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순간 손이 움직입니다.
  • 잔가지가 잘렸습니다. 평소라면 붙들고 고민했을 세부 사항을 그냥 넘어갑니다.
  • 마감이라는 외부 기준이 생겼습니다. 언제 끝나야 하는지를 내가 정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 이 목록에서 불안은 방아쇠였지, 총알은 아니었습니다.

  • 실제로 일을 시킨 건 좁아진 선택지와 내려간 기준과 명확한 마감이었습니다.
  • 불안은 그 조건들이 만들어지도록 몰아붙인 계기였을 뿐입니다.

☐ 이걸 구분해 두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우리가 재현해야 할 것이 불안인지 아니면 불안이 만들어낸 조건인지가 여기서 갈리기 때문입니다.
  • 대부분은 조건이 아니라 불안 쪽을 재현하려고 합니다.
  •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쪽이 시스템을 만드는 쪽보다 쉽기 때문입니다.

적당한 스트레스가 좋다는 말의 출처

☐ 불안과 성과를 연결할 때 가장 많이 동원되는 근거가 여키스-도슨 법칙입니다.

  • 각성 수준이 너무 낮아도 너무 높아도 성과가 떨어지고 중간에 최고가 된다는, 뒤집힌 U자 곡선입니다.

☐ 이 연구의 원본을 확인해 보면 조금 당황스럽습니다.

  • 1908년, 춤추는 생쥐 12마리에게 전기 충격의 강도를 달리해 가며 흑백 상자를 구분하도록 학습시킨 실험이었습니다.
  • 세 번의 실험 중 그 유명한 U자 형태가 나온 건 한 번뿐이었습니다.
  • 연구자들은 스트레스나 각성 자체를 측정하지도 않았습니다.
  • 측정한 건 전기 충격의 세기였습니다.

☐ 한 재평가 논문은 이 법칙을 두고, 고전이 대개 그렇듯 인용은 수없이 되지만 정작 원본을 읽어본 사람은 드물다고 지적했습니다.

☐ 다만 후속 연구를 거쳐 살아남은 부분은 있습니다.

  • 각성이 높아질수록 단순하고 익숙한 과제는 성과가 올라가지만, 복잡하고 낯선 과제는 오히려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 높은 각성 상태에서는 주의가 좁아지고 작업 기억이 떨어지며 시야가 터널처럼 됩니다.

불안이 잘 듣는 일과 잘 듣지 않는 일

☐ 이 구분을 우리 일에 옮기면 이렇게 됩니다.

  • 불안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미 아는 일에서 속도를 올려 줍니다.
  • 밀린 정산, 안 보낸 메일, 미룬 청소 같은 것들입니다.

☐ 불안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일에서 오히려 방해가 됩니다.

  • 사업 방향을 다시 잡는 일, 안 풀리는 문제의 전제를 의심하는 일 같은 것들입니다.

☐ 문제는 우리가 진짜로 풀어야 하는 것이 대게 후자라는 점입니다.

  • 그리고 불안할 때 우리는 후자를 피하고 전자로 도망칩니다.
  • 할 일 목록에 있는 쉬운 항목을 지우면서 하루를 보내고 나면 일은 많이 했는데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은 날이 됩니다.
  • 불안이 만든 성실함은 이런 식으로 소진됩니다.

불안을 계속 가지고 있을 수 있을까

☐ 못 합니다.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입니다.

  • 불안은 특정 대상에 붙어 있는 감정입니다.
  • 그 대상이 해결되면 불안도 함께 사라집니다.
  • 그래서 불안을 동력으로 쓰는 사람은 해결과 동시에 동력을 잃습니다.
  • 동력을 유지하려면 새로운 불안 대상을 계속 찾아내야 합니다.
  • 그리고 이 작업은 대개 스스로에게 거는 협박의 형태를 띱니다.

☐ 불안에는 종료 시점이 없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 마감은 날짜가 지나면 끝나지만, 스스로에게 건 불안은 끝나는 날이 없습니다.
  • 끝나지 않는 비상 사태는 발전이 아니라 소모에 가깝습니다.

그러면 불안을 가져야 할까

☐ 제 결론은 이렇습니다. 불안은 신호로 쓰고 연료로는 쓰지 않는 편이 낫다고 봅니다.

  • 불안이 올라온다는 건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정보입니다. 이 정보 자체는 가치가 있습니다.
  • 다만 정보를 읽었으면 거기서 내려와야 합니다. 불안한 상태 그대로 해결책을 찾으면, 시야가 좁아진 채로 찾게 됩니다.
  • 불안이 하던 일은 대체가 가능합니다. 선택지를 좁히는 일, 기준을 내리는 일, 마감을 만드는 일. 이건 감정이 아니라 장치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 불안 없이 저 조건들을 만들 수 있다면, 굳이 불안까지 데려올 이유가 없습니다.

불안이 있어야만 성취가 늘어날까

☐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다만 아무 압력 없이 저절로 된다는 뜻도 아닙니다.
  • 압력의 출처가 다를 뿐입니다.

☐ 회피 동기는 나쁜 결과에서 도망치기 위해 움직이는 것입니다. 불안이 여기에 속합니다.
☐ 접근 동기는 좋은 결과 쪽으로 다가가기 위해 움직이는 것입니다. 호기심, 재미, 책임감이 여기 속합니다.
☐ 둘 다 사람을 움직입니다.

  • 단기적으로는 회피 동기가 더 셉니다. 그래서 유혹적입니다.
  • 차이는 지속성에서 납니다. 회피 동기는 위협이 사라지면 함께 사라지고, 접근 동기는 성과가 쌓일수록 강해집니다.

☐ 불안으로 쌓아 올린 성취에는 부작용이 하나 따라옵니다.

  • 그 성취를 유지하려면 계속 불안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쉬면 무너질 것 같은 감각은 실제로 무너지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라, 처음부터 불안을 엔진으로 썼다는 증거에 가깝습니다.
  • 불안은 문제가 있다는 걸 알려주는 데는 쓸모가 있지만 그 문제를 푸는 도구로는 성능이 나쁩니다.

SPELL QUEST · 문장 수선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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